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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남지 2023년 1월호 (영웅, 하얼빈)

작성자명이**
조회수86
등록일2023-02-02 오후 5:33:29

영웅 & 하얼빈

 

각 매체에서 2022년 올해의 책을 발표했는데, 예외 없이 하얼빈을 거론하고 있습니다.

바로 김훈이 쓴 청춘 안중근의 이야기인데, 김훈 특유의 남성적인 필치로 묵직한 감동의 수혜를 저도 누렸습니다.

안중근의 이야기는 2009년 뮤지컬로 제작되어 10년이 지난 지금도 매진이 이어지고 있고, 얼마 전에는 우리나라 영화사상 최초로 뮤지컬 영화 영웅으로 제작되어 절찬 속에 상영되고 있습니다.

 

저희 온 가족도 영화를 보며 함께 눈시울을 적셨는데, 조국과 가족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하는 가슴이 뜨거워지는 수작이었다고 강추드립니다.

 

안중근은 1879년 출생해 31세인 1909년에 조선 통감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 이듬해 사형을 당합니다. 안중근은 천주교인으로 세례명은 도마이며, 자녀의 이름을 가톨릭 성인의 이름인 분도로 작명하기도 했습니다.

 

사실 천주교는 개신교와 교회관을 달리하기 때문에 자세히 알 필요는 없지만, 한국 천주교의 기원은 그 이후 100년 뒤에 본격적으로 시작된 개신교의 역사를 해명하는데 도움이 되기 때문에 조금 알 필요는 있습니다.

 

조선의 천주교는 1784년 이승훈이 첫 번째 영세를 받은 것을 천주교회의 시작으로 공식화합니다. 이후 1886년 프랑스와 조약이 체결되기까지 신유박해(1801), 병인박해(1866) 등 백여 년 간 약 만 여명이 순교를 당하는 박해를 받는데, 공식적인 이유는 교황청이 조상제사를 금지했기 때문입니다. 대표적인 순교지가 바로 흥선 대원군 시절 병인박해 때 약 만 명의 처형이 이루어진 절두산인데, 바로 개신교 양화진 외국인 선교사 묘역 바로 옆에 있고 천주교 성지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교황청은 1936년 일제의 신사참배를 허용한데 이어 1939년에는 조상제사도 허용합니다.

1983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조상제사가 빌미가 되어 순교한 천주교인 103명의 시성식을 위해 방한하는데, 잘못된 교황청의 방침 때문에 순교한 부분에 대한 내부비판이 논란이 되기도 한 걸로 알고 있습니다.

소설 하얼빈을 읽은 분들은 아시겠지만,

1898년 명동대성당을 완공하기도 했던 조선 천주교의 대부 뭬텔 주교는 거사 당시 안중근의 정치적, 민족적 대의를 인정하지 않았고, 하얼빈 거사를 살인 즉 교리상의 죄악으로 단정해, 안중근은 사실상의 파문을 당합니다. 이후 80년 동안 한국 천주교회는 공식적으로 안중근의 거사를 정당화하지 않다가, 1993년 김수환 추기경이 안중근을 공식적으로 추모하는 최초의 미사를 집전합니다.

 

한국에 본격적인 개신교 선교가 이루어진 것은 천주교보다 100년이 늦습니다.

1882한미수호 통상조약이 체결되고 1884년 알렌이 첫 한국 거주 선교사가 되고, 1885년 언더우드와 아펜젤러가 조선에 입국합니다. 개신교 선교사는 천주교와 달리 술담배와 조상제사를 금지했고 그 기조를 지금도 유지하고 있습니다.

물론 그전에 한국 최초의 개신교 선교사 독일의 귀츨라프가 1832년 한 달간 조선에 머물다 간 기록이, 그리고 2번째 선교사인 토마스가 1866년 미국 상선 제너럴 셔먼호를 타고 대동강에 오자마자 순교를 당한 일도 있습니다.

 

영화나 소설을 보신 분들은 천주교가 항일운동의 선봉에 선 걸로 아실수도 있지만, 사실 개신교의 역할에 비교할 수 없습니다.

1919년 삼일운동 당시 기독교인은 전체 인구의 1~1.5 %에 지나지 않았지만, 민족대표 33인 중에 천도교 15, 불교도 2, 개신교 16(목사 10, 전도사 3, 장로2, 집사 1)이었고, 천주교는 없었습니다. 삼일운동의 선봉과 아지트 역할을 한 것은 바로 전국의 교회였고, 그 방증이 경기도 화성의 제암리교회 학살사건입니다.

 

혹시 영화를 보시고 천주교에 대해서 자녀들과 이야기를 나눈다면 이 글이 조금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부디 이 좋은 영화가 더욱 대중들의 관심을 받기 원하며, 더불어 안창호, 이상재, 김마리아, 손정도, 유관순, 이승훈, 윤동주, 조만식, 서재필 등 수 많은 개신교 독립지사들도 관심을 받기를 기대해 봅니다.

새해에는 기독교 문화가 더욱 세상을 따뜻하고 인간미 있게 이끌어 갈수 있기를 고대해 해 봅니다.